레몬테라스 웨딩 in 대구
1. 레테
2. 인증서
Remonterrace

도움되는 게시판 | 퍼온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종현 작성일07-03-19 10:42 조회4,608회 댓글0건

본문

지난 13년간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며 이글을 적어 봅니다.

저희 부부는 아주 어린나이에 만났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인 17살에 만났읍니다.

여의도에서 학교 선배들과 모임이 있어 갔던 자리에서 즉석미팅이 이루어졌고,

그 만남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그후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계속된 만남이

이루어졌고, 요즘 말하는 속도위반을 하여 22세에 아기를 갖게되고,

제가 군대 생활을 하던중 아이를 23세에 낳게 되었고, 물론 결혼도 군대에 있는 동안

고참들과 후임들의 그리고 장교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하게되었고,

서로 사랑하며 살았읍니다.

그러던중 간암 판정을 받으셨던 어머님께서 쓰러지시면서 다리를 다치시고,

대퇴부 골절로 인하여 접합 수술을 하였지요.

그 수술의 후유증 이셨는지 결국 다리를 다치신 이후 한번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읍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전까지 제에게 고질병이던 속앓이를 수술하게 되었고,

악성은 아니지만 쓸개에 종양이 있어, 저 또한 수술을 하였읍니다.

수술전 재대후 하였던, 인테리어 목수일을 할수가 없던 저는

당구장이 노동력은 없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고, 저희 부부간의 갈등은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고 볼수 있읍니다.

아내는 당구장을 하던중 당구장에서 오던 손님이던 어떤 남자와 삼성생명에 가서 교육만 받아도

교육비 명목으로 50만원인가 나오는 돈을 받고자 그 남자와 함께 교육을 받으러 다니더군요.

그후 어느날 당구장들이 다 그렇듯이 단골들과 술자리도 하게 되고, 또 여흥을 즐기려

노래방도 가게 되더군요.

그 노래방에서 첫 번째 아내와 갈등이 시작 되었읍니다.

화장실에 간다고 아내가 나가고 그뒤를 따라 그 남자가 나가더군요.

그때 까지도 전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하였읍니다.

그런데 10여분이 지나도 나간 두사람이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도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로 향하던중 놀라운 광경을 보고야 말았읍니다.

화장실 아래쪽에 있는 계단에서 두 사람이 포옹을 한채 키스를 하고 있더군요.

그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쫒아 내려가니 남자는 계단 아래로 도망을 가고 아내는

2층 창문으로 뛰어 내렸읍니다. 그로인해서 아내는 엉덩이로 떨어지면서 꼬랑지뼈를

다쳤읍니다. 전 아내보다 우선 그 남자놈을 잡고자 쫒아갔으나 어느새 사라졌고,

다시 돌아와 보니 술에도 취하고 뛰어 내리면서 다쳤는지 아내가 누워 있는것을 보고

엎으려니 정신을 거의 잃었던 아내가 뒤로 넘어가면서 뒤쪽에 있던 맥주병에 또다시

머리를 다쳤읍니다. 그래서 아내는 병원에 입원을 하였고, 당연히 치료를 받았읍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희 부부의 관계가 한동안 소원한 관계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저는 다 잊고 아내를 용서 하였고, 그렇게 또다시 세월이 어느정도 흘러갔읍니다.

그러던중 또 사건이 발생 했읍니다. 당구장에서 여러 단골 손님과 술을 마셨었고,

저는 당구장 운영을 하기 위해 당구장에서 손님들과 당구를 치고 있었는데, 11시경부터

아내가 보이지 않더군요. 저는 당구장 운영을 형의 친구에게 맞긴채 형과 함께 주변지역을

뒤져가며 아내를 찾았지만, 찾을수가 없었읍니다. 그렇게 다시 당구장으로 돌아와 아내를 기다리던중 창문 밖을 내다보니 아내가 길 반대쪽에서 뛰어 오는모습이 보이더군요. 새벽3시경 이었읍니다.

3층 당구장에 있던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아래로 뛰어 내려가 아내를 데리고 오려고 보니

아내의 상의는 약간 찢겨진 모습이었고, 브레지어도 없었고 술에 만취되어 제정신이 아닌 아내를

업고 구장으로 올라가던중 당시 짧은 치마를 입고 있던 아내의 엉덩이 부근에 손이 갔고

치마속의 아내의 엉덩이는 맨살이었읍니다. 즉 팬티가 없었던 거죠.

일단 저는 아내를 업고 당구장으로 돌아온뒤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모두 내보낸뒤

아내에게 어떤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으나 정신이 없던 아내는 대답을 할 만한 상태가 되지

않아 치마를 들쳐 보았더니 남자에게 당한 흔적들이 보이더군요. 아침이 되어서야 아내를 깨워

다시 자초지종을 물어보았고, 그 당시 함께 보이지 않던 단골 손님중 한명과 노래방을 갔고

그곳에서 그 남자에게 당하려고 하여 자신은 거세게 반항을 하였고, 그 남자와는 아무일도

없었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후 저는 그 남자에게 찾아갔고, 그 남자에게도 자초지종을 물었읍니다.

그런데 그남자는 오히려 제게 하는말이 아내 간수좀 잘 하라고 오히려 저를 몰아부치더군요.

이 얼마나 어이 없는 일인지 저는 그 말을 듣고 아내를 그곳으로 불러서 이 남자가 이렇게

말하는데 너는 남편에 대한 덕적인 생각도 없느냐고 말하며, 강간미수던 강간이던 신고를

하라고 하였읍니다. (참고로 강간은 친고죄로 본인의 신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말이

아무일도 없었으니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제가 보았던 성교의 흔적은 무엇이었는지

참 어이가 없더군요. 그러나 결국 아내는 신고를 거부하였고, 그렇게 또 아무일도 없던듯이 세월이

지나갔읍니다. 당구장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었을때 생긴일이었읍니다.

그 당시 단골이었던 손님들은 그런꼴을 다 보았고, 그런것을 본 손님들이 또 다시 당구장을

찾았을까요?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였읍니다.

그 후로 당구장 운영은 더욱 힘들어졌고 계약후 2년이 되어 손님이 없던 당구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도 못한채 당구장 시설을 다 걷어치게 되었읍니다. 당연히 망한 것이지요.

2년여 동안 당구장을 하면서 빚만늘고 생활이 어려워 지면서 22평 이었던 아파트를 팔고 18평짜리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읍니다.

그후 저는 완전히 몸상태가 회복된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몸을 추스렸다고 생각되어 당구장을

하기전 했던 인테리어 목수일을 다시 시작 했읍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든일을 할때면

수술했던 부위에 고통이 수반 되었지만, 그 당시 딱히 할일이 없던 제게 일당 9만원짜리 목수일은

저에게는 처자식을 먹여살릴 훌륭한 일거리 였읍니다.

그러나 한달 20일 이상을 일하면서 돈을 벌어와도 돈은 모이지 않더군요. 당구장을 하면서 진 빚

3000만원의 이자를 내고도 생활비는 충분히 남음에도 돈은 모이지 않았읍니다.

약 한달에 180~200만원의 돈을 벌어옴에도 불구하고 왜 돈은 모이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아내의 씀씀히가 컸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집에 필요한 물건들 보다는 항상 얼마쓰지도

않고 버릴 물건들을 자주 사왔고, 먹을 거리를 사와도 먹을 양보다 많이 사와 썩어서 버리는

경우도 많았읍니다. 그래도 저는 아내에게 벌더온 돈을 모두 주며 살아갔읍니다.

그러게 살아가던중 아내는 저에게 제의를 하나 하던군요. 자신도 일을 다니며, 아이들 학비라도

보태보겠다고, 저는 처음에는 말렸읍니다. 제가 벌오온 돈 만으로도 아껴쓰면서 살다보면 언젠가

빚도 다 갚고, 집도 넓혀 갈수 있을거라 말하며 아내가 일 나가는 것을 말렸읍니다.

그러나 굳이 돈을 벌겠다며 일을 다니기 시작했읍니다. 처음에 시작한 일이 그 당시 한참 유행처럼

퍼지던 길거리에서 카드 발급을 하는 일을 시작 했읍니다. 처음에는 한달에 약 80만원 정도의 돈을

벌어 왔읍니다. 그로 인해서 생활은 조금씩 나아지는듯 보였읍니다. 맞벌이를 하게되면서 아이들은

유치원 종일 반에 맞기고, 오후에 아이들을 데려 오고 했읍니다.

그렇게 나아지던가 싶던 생활은 몇개월 되지않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었읍니다.

한군데 직장에서 안주하지 못하던 아내는 여기저기 회사를 옮겨가면서 한달 다니다 말고 다른직장

오래 다녀야 두어달 그런식으로 일을 하였읍니다. 그로 인해 마지막 달에 다닌 회사에선 월급한푼

받아오지 못하였고, 하루하루 일을 나가면서 차비와 점심값의 명목으로 한달에 약 30~40만원의

돈은 물론 제 월급에서 나가게 되었읍니다. 또한 일은 다니려면 가방도 필요한것은 당연한 일이

지만 가방사고 또 화장품류, 옷 신발등을 구입하며 벌오오는 돈보다는 나가서 쓰는 돈이 더 많았읍니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받아오는 돈은 생활비에 보탬보다는 자신의 옷을 산다던가 신발도 한달도 못되어 발에 안맞는다며 새로 사신는것으로 탕진 했읍니다. 그래도 제가 받아오는 월급이라도

아껴 쓴다면 차후 말하게될 지금의 사태는 일어 나지 않았을텐데 또 제가 벌어온 돈을 제가

관리하기보다는 아내를 믿고 지금까지 맏겨왔던 제자신이 바보같고 멍청한 인간 이었다고 생각 되는군요.

이렇게 또 생활은 이어졌고, 나아지지 않는 생활이지만 그래도 저는 처자식을 굷기지 않고

열심히 일할수 있다는 마음만으로 살았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읍니다. 일을 나갔다가 일이 일찍 끝나 집에 돌아와 우체통

에서 우편물을 들고 집에와 어떤 것들이 왔나 살펴 보던중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할 우편물을

보았읍니다. 압류 통지서 였읍니다. LG 카드사에서 1000만원의 카드빚을 갚지 않으면, 집에

압류가 들어온다는 통지서 였읍니다. 당시 그것을 보며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

읍니다. 그후 몇시간이 지난후 일 나갔던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자신이 쓴 돈은 300만원

이고 같이 회사에 다니던 회사 후배들의 휴대폰 요금이라던가 술값등을 자신의 카드로 대납해

준 돈이 700만원 이라는 거였읍니다. 그외 다른 카드에서 쓴돈이 약 200여만원 정도였읍니다.

돌려막기로 계속 막아오다가 어느날인가 이자와 원금을 넣지 못하였고, 카드는 정지되어 이래저래

고민하던중 3달째인가 되자 압류 통지서가 날아왔던 것입니다.

당시 당장 그돈을 갚을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했던 아내는 방법을 찾은 것이 카드론 대출이었고,

2003년 7월경에 1600만원 상당의 카드론 대출을 받았고, 보증이 없으면 대출이 되지 않았기에

제가 보증인이 되어 카드론 대출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후에도 아내는 계속 나가서 일을 했고, 생활고는 더욱 심해지기 시작 했읍니다.

카드론의 원금및 이자로 한달에 약 45만원의 돈을 갚아야 했고, 3000만원의 대출이자 16만원

등 그것들을 다 갚아가면서 살아가기엔 너무나 벅찬 일이었읍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계속 일을

다니면서 한회사에 안주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회사를 옮기는것은 계속되었읍니다.

그러다 아내는 텔레마케팅 일을 시작 하였읍니다. 처음에는 책을 파는 일을 시작 했으나, 그도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회사를 옮겼고, 텔레마케팅으로 보험을 파는 회사에 다니기

시작 하더군요. 그러면서 약 2달간은 120만원 정도의 돈을 벌어오더군요. 본인이 진빚은 본인이

책임 지겠다는 생각을 좋게 보았던 저는 그래도 그정도의 돈을 벌어오는것을 보고 아내가

이제는 다른사람이 되었다고 생각 했읍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하더군요.

또 다시 2달여간 다니던 회사를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또 돈벌이도 되지 않는다며, 회사를

여기저기 옮겨 다녔읍니다. 물론 아지막 달에 일한 돈은 못 받는 것은 당연지사였읍니다.

또한 생활이 어려워지는것도 점점 더 하였읍니다.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회사에서 회식을 한다면서 11시 12시 시간이 점점 늘어나 새벽3~4시에

집에 들어왔읍니다. 그건 저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 였읍니다. 처음 몇번인가는 너무 늦게 들어

오지 말라고 충고를 하였으나, 매번 미안하다는 말뿐 회식만 하면 새벽 3~4시에 들어오는것은

예사였고 어떤 날에는 아침에도 들어오는 것이였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방관만 할수 없었던 저는 아내와 자주 다투게 되었고, 서로 몸싸움도 여러번

이어졌읍니다. 싸울때 마다 아내는 회사일인데 어떻게 하냐는 식으로 말할뿐 몇번 미안하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그런말도 아예 하지 않더군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벌어오는 돈으로 대출금등을

갚으려 하기에 회사 다니는 것을 말릴수는 없었읍니다. 또 말린다 하여도 듣지도 않았읍니다.

이렇게 생활에 가던중 결국은 대출금 원금 이자등을 제대로 갚아 나가지 못하고, 2004년 3월경에

또다시 압류 통지서를 받고야 말았읍니다.

결국 그나마 유지해오던 집을 팔게 되었고, 이것 저것 빚을 갚고나니, 수중에 남은 돈으로는

전세조차 갈수가 없어, 2004년 4월경에 보증금1000만원에 18만원 짜리 삸월세를 얻어 이사를

하였읍니다.

그렇게 월세집 살이는 시작 되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좋은일도

있을거라 생각하며, 살아왔읍니다.

그러나 아내의 회사 생활은 그대로 였고, 늦은 귀가와 외박또한 끊이질 않았읍니다.

무슨 회사가 회식은 그리 많이 하는지 옮겨가는 회사마다 한달에 보통 10회 이상 한주에 3~4번은

회식을 하던군요 그 핑계로 아내는 새벽 귀가, 외박은 점점더 심해졌고, 저희 부부의 다툼은

끊이질 않았읍니다.

또 그렇게 살던중 2005년경 7월에 아내가 2006년 11월 현재까지 다니는 처음으로 오랫동안 근속

하는 흥국쌍용화재에 취직을 하였읍니다.

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아웃 바운드라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보험 가입자를 찾아 가입시키는 일이

였읍니다. 이 보험 일이라는게 절친한 주변 사람들에게 보험을 파는 일이 자주 생기는 것이라

보통 동창들이나 주변 친지들에게 손을 벌리기 일쑤 였읍니다. 그러나 저는 주변 친지들에게는

보험얘기도 꺼내지 말도록 하였읍니다. 주변 친지들에게 보험을 권하다 보면 친지들과의 사이가

나빠지는 사례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니 친구라던가 동창들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저는 정말 죽고 싶을 심정의 글을 보았읍니다.

아내가 자신의 메모장에 써놓은 글이였지요.

 

나는 남편을 정말 싫어하는걸까 ?

(이름을 밝힐수 없는 아내의 동창생 : 이후 동창생)

동창생 너를 사랑하는 걸까?

 

또 다른 메모

 

메니저도 있고,

누구 언니도 있지

왜 없겠어

사랑해 동창생아

 

2004년 2월 경의 일이었읍니다.

이글을 보시는 여러분 제 심정이 어떠 했을지는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일이 있기전들의 일을 다시 얘기 하겠읍니다.

흥국 쌍용 화재를 다시면서 2005년 10월경 외박을 하고 들어온 아내와 싸우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회사에 간다던 아내가 회사를 갖다가 와보니 짐을 싸가지고 집을 나갔더군요.

참 어이가 없었읍니다. 자신의 잘못은 항상 뉘우치지도 않은채 심한 말다툼을 하였다고

집을 나가다니

그러나 저는 아이들을 생각하여 처가집에 머물고 있던아내를 찾아 설득 끝에 다시 집으로 데려

왔읍니다.

설득 내용은 아내가 제발 늦게 다니지 말았으면 하는 내용이었고, 회사 회식이야 나도 하는 것인데

회식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회식을 하더라도 일찍 들어와 달라는 호소를 하였읍니다)

그렇게 설득을 해서 데려온후 몇일간은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회사도 잘 다녔읍니다.

그러나 아내의 늦은귀가와 외박은 또다시 시작 되었고, 그후에는 싸우기만 하면 집에 몇일씩

안들어오는 것도 습관적으로 이어졌읍니다. 그렇게 지내면서 도대체 아내의 채무 상태를 알수없었던 저는 아내의 통장을 (집에서 보관하지 않고 회사에서 보관 약 2~3년전부터) 보여줄것을 요구

하였으나 매번 가져온다 하면서도 말뿐이였읍니다. 그러다 아내의 회사에 찾아가 통장을 가지고

오게 하여 보았더니 통장이 3개정도 되었고, 그중 하나에서 아내가 또다시 산와머니라는 곳에서

300만원의 대출을 받은것을 알았고, 또 저희 부부는 싸우게 되었읍니다. 2006년 5월경의 일이었고

그후로 돈은 제가 관리하기로 맘을 먹었읍니다. 그뒤 또다시 아내는 또 외박을 하고 새벽에 귀가하고 또 싸우고 그러다 결국 2006년 8월에 19일에 회사에 간다며 (항상 회사간다면서) 나가더니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9월 16일에는 이혼 소장이 날아오더군요.

 

소장 내용을 다 밝힐수는 없으나, 이혼의 요구가 저에게 3000만원의 위자료와 아이는 자기가

키우겠다며, 약육비로 한달에 100만원씩 내 놓으라더군요

이러는 와중에도 아이들을 생각한 저는 이혼 보다는 차라리 지금 이상태(집을 나간상태) 그냥

지내던지 아니면 들어와서 아이들이라도 챙기면서 살아갈것을 설득 하였읍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를 빌미로 저를 만날 때라던가 휴대폰 메세지로 차비 없다 점심값 없다하며 돈을 요구하기 일쑤고

또 자기가 진 빚이 대략 2000만원 정도 되는데 그것을 제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갚아주면 차후에

본인이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하더군요.이혼소송을 하고 나서의 얘기 입니다.

 

이게 지금까지 아내와 결혼후 이어진 생활였읍니다. 이글을 쓰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지만

저는 정말 바보이고 병신이라는 생각만 드는군요. 왜이렇게 사는지 정말 살아갈 힘이 없읍니다.

죽고싶은 생각도 여러번 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차마 죽지도 못하는군요.

이외에도 여러가지 일들이 많지만 다쓰지도 못하였읍니다.

 저의 13년간의 결혼 생활 참으로 한심하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